디지털 규제와 지정학이 충돌한 첫 사례
유럽의 새로운 디지털 규제법안 적용
2025년 여름, 유럽연합(EU)은 일론 머스크가 소유한 소셜미디어 플랫폼 'X'(구 트위터)를 상대로 10억 달러 이상의 과징금을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며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 조치는 EU의 새로운 디지털 규제인 디지털 서비스법(Digital Services Act, DSA)에 따른 첫 대규모 제재가 될 전망이며, 기술 규제와 미-EU 간 외교적 갈등이 얽힌 상징적 사례로 부각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법(DSA)의 등장과 적용
DSA는 2023년 발효된 유럽연합의 핵심 디지털 규제로, 플랫폼 기업에게 다음과 같은 책임을 요구한다:
- 불법 콘텐츠 및 허위정보에 대한 적극적 관리
- 외부 연구자에게 콘텐츠 및 알고리즘 관련 데이터 제공
- 광고 투명성 및 유료 인증 사용자(authenticated user)에 대한 검증 강화
EU는 2023년부터 X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 왔으며, 이미 전년도에 위법 정황을 담은 예비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조사 내용은 크게 두 가지 축으로 구성된다. 첫째, 외부 연구자 접근 제한 및 알고리즘 투명성 부족. 둘째, 허위정보와 혐오 표현에 대한 방치와 대응 미비이다.
과징금, 서비스 개선 명령, 정치적 충돌
규제 당국은 이번 여름 X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제재를 준비 중이다:
- 과징금 부과: 최대 10억 달러 이상. DSA는 기업 매출의 최대 6%까지 부과 가능.
- 서비스 수정 명령: 알고리즘 변경, 인증 사용자 검증, 투명성 향상 등
- 머스크의 반발: "정치적 검열이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이라고 반발
가장 민감한 사안은 과징금의 산정 기준이다. X는 비상장기업으로 일론 머스크 개인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있으며, EU는 그가 소유한 SpaceX 등 다른 기업의 수익을 기준으로 삼을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이는 과징금 규모를 수십억 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조치다.
정치적으로는, 이번 조치가 트럼프 대통령 재선 이후 미-EU 간 무역갈등과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JD 밴스 부통령은 유럽의 규제를 "디지털 검열"이라 비판한 바 있으며, 백악관은 공식적으로 DSA와 DMA(디지털 시장법)가 미국 기업을 차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글로벌 테크 기업에 미치는 파장과 고려사항
이번 조치는 X에 국한되지 않는다. EU는 메타(Meta), 애플(Apple) 역시 디지털 시장법 위반으로 별도 제재를 준비 중이며, 메타는 아동 보호 미비로 DSA 추가 조사 대상이 되었다. EU는 향후에도 적극적인 규제를 예고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 기술주 전반에 다음과 같은 리스크 요인으로 작용한다:
- 규제 리스크: 미국 대형 기술주(GAFA 포함)에 대한 잇단 과징금 및 사업 모델 수정 요구
- 수익성 압박: 알고리즘 수정 및 콘텐츠 관리 비용 증가
- 정치적 리스크: 미-유럽 간 무역 보복 및 규제 충돌 가능성
반면, 장기적으로 플랫폼 기업들의 투명성과 신뢰성이 강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부 투자자에게는 기회 요인도 될 수 있다. 특히, 강력한 콘텐츠 관리 및 규제 대응 시스템을 선제적으로 구축한 기업들은 상대적 우위를 점할 가능성이 있다.
글로벌 증시에 미치는 영향 및 주목할 기업들
이번 유럽연합의 디지털 서비스법 집행은 미국과 유럽 증시에 상장된 기술기업들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우선, 미국 증시에서는 플랫폼 기반의 광고 수익 모델을 갖춘 기업들 — 예를 들어 메타(페이스북), 알파벳(구글), 스냅(Snap), X(비상장이나 관련 계열사 포함) — 이 규제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 광고 투명성, 알고리즘 공개, 유해 콘텐츠 대응이 DSA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은 수익 구조의 수정이나 운영비 증가 등의 리스크를 안게 될 수 있다.
또한, 유럽 증시에서는 플랫폼 기술보다는 사이버 보안 및 AI 윤리 기술, 콘텐츠 필터링 솔루션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반사이익을 볼 가능성이 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탈레스(Thales), 핀란드의 노키아(Nokia) (네트워크 보안 부문), 독일의 TeamViewer 등이 주목받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기업들은 유럽 내 플랫폼 규제 강화 움직임 속에서 정부 및 민간의 솔루션 외주 수요 증가에 따른 수혜가 기대된다. 특히, 머신러닝 기반의 콘텐츠 분류 및 유해정보 식별 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은 중장기적으로 플랫폼 기업의 파트너로 부상할 수 있다.
이번 규제 이슈와 연계해 주목할 만한 한국 기업은 AI 기반 콘텐츠 분석 및 모니터링 솔루션을 제공하는 솔트룩스(304100.KQ), 씨이랩(189330.KQ) 등이다. 유럽과 미국의 빅테크 플랫폼들이 자사의 콘텐츠 정책을 강화하면서, 해당 기술을 외부에서 도입하는 수요가 증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카카오(035720.KQ)와 같은 SNS 기반 플랫폼 기업들도 글로벌 확장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DSA와 유사한 규제에 대한 선제적 대응 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규제 강화의 시대, 투자자들이 주목할 점은?
글로벌 거버넌스의 기준으로 작용
DSA는 단순한 유럽 내 규제를 넘어, 글로벌 플랫폼 거버넌스의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머스크와 X를 대상으로 한 초대형 제재는 향후 다른 기업들에도 '경고 신호'가 될 수 있으며, 유럽을 포함한 다수 지역에서 비슷한 법적 기준이 확산될 수 있다.
투자자 입장에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와 고려가 필요하다:
- 단기적 리스크: 대형 기술주의 주가 조정 가능성, 규제 반발에 따른 법적 분쟁 확대
- 중기적 기회: 콘텐츠 검열·투명성 기술 기업, 사이버 보안, AI 윤리 솔루션 기업 수요확대
- 장기적 변화: 디지털 플랫폼에 대한 사회적 책임과 정보 생태계 재편에 따른 밸류에이션 체계 변화
향후 EU의 최종 결정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사업 전략뿐 아니라, 글로벌 디지털 생태계의 규범을 바꿀 수도 있다. 이 사안을 단순한 법적 분쟁이 아닌, 새로운 디지털 규제 시대의 신호탄으로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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